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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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허름한허세 0 299 0 0

(2021년 11월 15일)


산책


어제는 산책을 나갔다 걷고 물을 마시고 또 걷다가 커다란 물푸레나무 아래서 책을 파는 사람을 만났다 고양이 가면을 쓴 사람이었다 테이블 위엔 두권의 책이 올려져 있었다 당나귀 그림이 그려진 흰 책과 짙은 녹색 책이었다 나는 당나귀 그림이 그려진 흰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한번 펼쳐 보세요 고양이가 말하고 표지를 넘기자 책 속엔 바다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한참을 걸었다 바다로 가까이 다가가니 희고 둥근 종이들이 물 위에 떠 있고 종이에 무언가 적혀 있는 것 같아 잡으려 손을 대니 나는 어느새 바닷속에 있고 떠 있던 둥근 종이들은 물 안의 그림자가 되어 까만 해처럼 보이고 내 얼굴 위로는 그림자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무수히 많은 검은 해를 맞으며 또다시 걸었다 숨을 쉴 때마다 물이 들어왔다

* 강지이,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에서 (16)
- 창비시선 462, 2021. 8.17



:
더 늦기 전에
나도

내가 산 책 속으로
걸어들어가

허우적대고 싶다.
숨을 쉴 때마다 물이 들어올지라도

( 211115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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