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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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진

16 khs0127 0 203 0 0

어머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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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대청마루 벽에 어머니의 전신 독사진이 걸려있다.
대밭 앞에서 찍은 17세의 꽃다운 아가씨다.
검정치마 흰 저고리를 입은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얌전히 서 있는데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그 사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금년에 87세 이신 지금의 모습과 대조를 해 본다.
마치 화장술로 배우를 변장시킨 것과 같은 세월의 사진이 나로 하여금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사진만큼 정직한 그 무엇도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천지만물과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나,
심지어는 마음의 온도까지 꼭 찍어 표현해주니 어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희한한 물건이라 아니 하겠는가.

그래서 예전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귀신 둔갑 시키는 물건이라며 사진기를 앞에 들이대면 도망을 갔다고 한다.
귀신같이 세월을 찍어내는 그 사진기가 내 어머니의 과거를 소생시켜
우리 남매들로 하여금 기쁨과 허무를 지금까지 나누어 주고 있다.
어머니도 손님이 오면 사진을 보라 하시며 추억에 젖어 예전에 부르던 동요를 부르신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어머니의 사진을 가지고 어떤 청년에게 장난을 한 일이 있다.
“ 이 처녀 어떠세요? 중매해 줄 터이니까” 하니 그 청년 언 듯 보고는
“ 요즘 세상에 참 보기 드문 요조숙녀네요. 한번 만나게 해 주세요” 라고 하여,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이 처녀가 우리 어머니라고 했더니 ‘박장대소’를 하였다.
어머니는 날 보고 꾸중을 하시면서도 재미가 있는지 그 청년에게 사진 설명을 신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우리 집을 오가는 사람마다 사진을 보고 유관순 열사가 서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시대적 의상으로 봐서는 유관순 열사를 생각게 하지만, 갸름한 얼굴형, 예쁜 눈, 코, 입술, 몸매 등은 전여 다르다.
어머니는 나 같은 사람을 그 훌륭한 분과 비교하여 준다고 퍽 즐거워하며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셨다.

아들들은,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젊고 예쁜 때가 있었는데
아이구나 이렇게 늙었구나 하며 세월을 야속히 여겼고,
딸들은, 아! 어머니 참 예쁘네요. 우리들은 왜 어머니만 못할 꼬 하면서 사진을 보고보고 또 보고한다.
맞는 말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현대적인 얼굴이라면 어머니는 고전적인 얼굴이다.
두 분의 월등한 모습을 흙으로 빚어서 우리 자매들을 다시 만든다면
아주 멋진 모습 일 텐데 어디 그것이 맘대로 되랴!

어느 날 사진을 자세히 보시던 어머니가 다시 액자를 떼어서 고쳐 걸어라 한다. 왜 그르시냐고 했더니,
예뿐 운동화를 신고 찍었는데 액자를 잘 못 끼워 보이지 않으니
그 운동화가 보이도록 종이를 잘 끼워 넣어 라는 것이다. 시키시는 대로 즉시 고쳤다.
그리하고 보니 멋진 여성이 되셨다. 신발 한 켤레로 현대 물결을 타고 오신 신여성이 되다니---,
나는 고이 간직한 어머니의 앨범을 열어 보았다.
첫 장에 결혼사진이 끼어 있다. 선교사가 주선하여 준 신식 결혼식 사진이다.
가정집 같은 초창기의 안의 읍 교회 마당에서 당시로는 26세의 노총각인 아버지가
하얀 바지저고리에 흰 두루마기, 흰 고무신, 그리고 혼인 서약서를 말아서 들고 서 있으며,
17세의 어머니는 작은 장미 송이를 조롱조롱 달아맨 하얀 너울을 눈썹이 보일락 말락하게 쓰고
혼인 서약서와 종이 꽃다발을 들은 채로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어머니는 그 결혼사진을 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 알고 앨범 첫 장에 넣어 두었다가
삶의 <희노애락>이 올 때마다 보고 58세에 천국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였을 것이다.
두 번째에서 끝장까지를 넘기니 그렇게 포동포동 하던 살결과 하얀 얼굴은 없어지고,
깡마른 몸매에 새까만 피부인 어머니가 있다.
예수 믿는다고 쫓기어 난 가난한 가문에 시집와서, 별명이 ‘대왕대비’이신 할머니의 시집살이에,
맏며느리의 책임에, 농장 일에, 자식들 뒤치다꺼리에 한시라도 쉴 틈이 없이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가
사진 속에 그려져 있다.
참으로 웃음을 잃어버린 표정들이 일일이 설명을 안 해도 알 것 같다.
솔직히 어머니 앞이 아니라면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그 사진들을 보고 어머니는 왜 아버지 같은 가난한 총각과 결혼을 하여 이 고생을 하며 살았느냐고 했더니,
너희 아버지처럼 마음 착하고 신앙 좋은 사람 아직까지 못 만났고,
또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어 후회 없이 살았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얼마나 모범적인 아버지였느냐. 나는 천번만번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네 아버지와 살 것 이라고 하시며 도리어 나를 꾸중하셨다.

원수 같은 남편도 죽고 나면 가슴에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좋은 아버지가 어머니 49세에 소천 했으니 그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또 다른 앨범 한권을 보면 알 것 같다.
할머니는 죽은 아들집에 살기 싫다고 막내아들 집으로 가셨다.
아버지 생전에 3남매는 결혼을 했고 4남매가 남았다.
어머니는 미혼인 그 4남매를 위하여 삶과 투쟁을 하면서 살아오셨다.
때때로 손자, 외손자, 증손자를 안고 즐기며 웃는 모습과 남은 자녀들의 결혼사진들,
흑백사진에서 칼라사진으로 바꾸어지는 과정의 사진들이 한장한장 세월을 엮어가며 붙어있다.

나는 흑백과 칼라 사진을 분류하여 붙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기타 사랑하는 일가친척의 사진들을 내 앨범에 옮겨 붙였다.
왜냐하면 어머니 천국가시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시던 그리움의 사람들을 내가 보관하고 싶어서다.
흑백 시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총 천연색의 시대가 왔다.
맑고 아름다운 색의 사진이 화려하게 앨범을 차지하고 있다.
이 세상 임무를 다 마치신 어머니가 권사로, 할머니로, 증조할머니로,
이웃의 친구로 춤추며 찬송 부르는 신명나는 모습들이 있다.
작년에 어머니가 커다란 사진을 가지고 오셨다. 무슨 사진이냐고 했더니,
나 죽으면 들고 갈 사진인데 지난번에 찍은 것은 늙고 인상이 고약해 보여서 다시 찍었다고 하신다.
눈 감으면 보지 못할 사진인데 생전의 바램인지, 추억의 조각인지,
아무튼 젊고 좋은 인상을 조객들에게 보이고 싶은 여자로서의 작은 소망이신 것 같다.

어머니의 몇 권 앨범 속에 인생 87세의 드라마가 들어있다.
가을이 겨울을 부르듯이 나도 세월의 부름에 가야만 한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한편의 드라마를 앨범 속에 붙여서 내 후손에게 건네주고 가고 싶다.
보던지 말든지 그냥 남겨두고 가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벽에 걸려있는 독사진을 보시면서
나도 이런 때가 있었는데를 반복하시며 웃고 계신다.

글/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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