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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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시절

21 허름한허세 0 276 0 0
(2022년 4월 1일)


수상한 시절


첫봄인데
꽃들이 모두 순서없이 피었다
황홀을 터뜨리던 저들의 몰락 같다

바람이 없는데도
지진 맞은 듯 흔들린다
꽃을 보던 마음이
다른 길을 옮긴다

길 건너 공원에는 안개가
최루탄 연기처럼 자욱하다
더듬거리며 연인들이
오리무중이야 앞이 보이지 않아
안개 속으로 스며든다
설레야 할 심장이 마스크를 썼다
감동 없는 날은 빼고 싶은 시간이다

신이 코로나를 이용해
결국 한가운데 지옥을 숨겨놓았다
오늘은 가까스로
입속에 말이 적어져야겠다

"눈밭에서 길을 잃을 때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 거야" 여자가 말한다
"어둠보다 더 두려운 건 권태인 거야" 남자가 말한다

두 사람의 쓴소리가 가까워진다
쐐기풀에 베인 듯 살갗이 따갑다

쓴소리하는 그들을 보다가
나도 한때 쓴소리꾼이었지,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다 세상 다 보낸 건 아닐까

우두커니 서서
환한 거리를 내려다본다
달려가고 달려오는 불빛들
저것이 일상일까

우리에게도 일상이 있었나

수상한 시절이 계속된다

* 천양희, [창작과 비평 봄 2022]에서 (117~118)
- 창비, 통권 195호, 2022. 3. 1



:
중얼거리다 세상 다 보낸 건 아닐까
라고, 돌아보기 전에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우짜든동 나가보자

수상한 시절이 계속된다해도
새잎은 돋아날 테니까

그런
4월이다.

( 220401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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