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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허름한허세 0 122 0 0
(2022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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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다가
죽은 사람은 사진을 보아도 오랜만이다
죽은 사람은 사진을 빛바래게 하지만
동시에 흘러간 시간을 활기차게 한다
오늘도 가슴 아픈 것은 죽은 자가 아니다
그래 어느덧 우리는 살아서 짓무른
시력을 탓하는 나이가 된 걸까
십년 동안 한 시대를 늙어버린 걸까
우린 만났다 광화문 예전 골목에서
십년 후 태양이 야경과 교체되는 세모
예전처럼 악수를 하고 동동주를 시켰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예상보다 더
술도 추억도 사진도 그 사이의 세월도
나는 왜 이 시대가 죽은 사람만을
악을 쓰며 예찬하는지를 '떠올렸다
악을 쓰며 우린 서로를 부추겨 흥을 키웠다
아무도 취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부축하지 않았고 부축받지 않았다
그래, 짓무른 시력을 탓할 시간이 되었다
가자, 더이상 한데 뭉쳐 실패할 시간이
우리 세대한테 남아 있지 않다 일어서
우린 각자 가던 길을 가야 한다 흩어져
각자 완벽할 리는 없는 것을 알고 그러나
가야 할 것을 아는 남은 삶의 돌이킬 수 없는
앞날을 望(망)40 우리는 말없이 받아들였다
낯익은 정거장이 그날따라 외투깃을 올리고
부러 힘을 준 발길이 갈라졌다 그때 올디스
우리 젊은날보다 한 십년 앞섰던 60년대
서양노래가 진열창 앞 밝은 자리를 흘러넘쳤다
어둠 속에 등 돌린 자세로 잠시 멈췄다 나는
조금 조용했을 뿐 앞세대도
나을 것은 없었다 아니 그만큼
더 난감했으리 우린 이제사 헤어지고
만나는 방법을 조금 알 뿐 아닌가 다만
앞세대보다 조금만 빨랐기를 바랄 뿐이다
추억으로 밤을 지새기엔 시대가
식구들이 아직 미진하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는 30대의 마지막
정물화를 만들었다 눈이 내리고 그것조차
배경이 되었다 1991년 12월 30일

* 김정환, [희망의 나이]에서
- 창비시선 107, 1992.11. 1



:
30대의 마지막 정물화
더하기 서른 한 해,

쉰도 훌쩍,
넘어버렸네

우리는
각자 완벽할 리는 없는 것을 알고

가야할 것을 아는
돌이킬 수 없는 앞날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가자, 일어서 각자 가던 길을

밤마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이라도 10바퀴쯤 돌자.

( 221230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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