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너머 멀리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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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너머 멀리멀리

21 허름한허세 0 269 0 0
(2022년 11월 11일)


세월 너머 멀리멀리


국수를 삶는다. 밤 열 시. 정오에 한 끼를 먹었으니 이것은 점심인가. 잠을 자거나 먹는 일이 지구의 시계를 벗어나 있고, 손을 뻗어 붙잡고 싶은 저 아름답고 두근거림으로 빛나는 것들.

그 중의 하나가 빗줄기다. 떠나는 사람의 긴 발처럼 밤비 내리고 있다. 성큼성큼 떠나버렸는데도 여전히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에선가 숨어 있던 지렁이들이 다 나와서 울고 있는 것 같다. 입술은 사랑한다고 말한 후 밀봉해버리는 세계의 입구. 그 세계의 끝에 닿진 못했지만 심장에서 심장으로 뛰어다녔던 긴 발은 기억한다.

긴 국수 가락들. 긴 빗소리. 이렇게 긴 발들이 남은 까닭은 어느 날 당신이 내 심장에 올려놓은 맨발을 잊지 못하기 때문. 국수도 끊어지고 빗소리도 끊어지고 당신의 긴 발들도 끊어져 깡총깡총 뛰어가는 게 보인다, 창문 너머 멀리멀리, 세월 너머 멀리멀리.

* 박서영,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에서
- 걷는사람 시인선 7, 2019. 2. 3



:
아 름 답 다

나즉이 읊조리는데
눈물이 글썽인다

긴 빗소리 들으며
잠들고 싶다

너무
메마른 날이 오래...

( 221111 들풀처럼 )


#오늘의_시


- 사진 : ㅅ ㅈ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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