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맴 - 박소란
허름한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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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8 20:26
(2021년 10월 8일)
맴맴
그 여름의 숲에서 당신은 물었지
낯선 초록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게 물었지
왜 우는가
왜 너는 울어야만 하는가
짐짓 어리둥절한 채로 나는
초록 속으로 초록 속으로 쉼 없이 걸어들어가고
당신은 물었지
세상 가장 근심 어린 얼굴로
왜 우는가
무엇이 너를 울게 하는가
나는 무거운 외투를 벗고
신발도 가방도 놓고
초록을 한송이 꺾어 슬며시 주머니 속에 넣었지
오래오래 그것을 길러볼 요량으로
언젠가 한 번은 당신을 초대할 요량으로
당신은 물었지
왜 우는가
왜 우는가
나는 그만 길을 잃고 싶었네, 무성한 초록 속에
당신을 오롯이 남겨두고
슬픈 일은 모두 사라져
시간이여,
이제 달려간대도 나를 싣고 저 멀리 가버린대도
* 박소란, [한 사람의 닫힌 문]에서
- 창비시선 429, 2019. 1.31
:
가을인데,
가을인데 하면서도
다들 반팔로 돌아댕기고
한낮 사무실 에어컨도 여전히 돌아간다.
나는 그만 여름을 잃고 싶은데,
어서 차갑게 식어가고 싶은데,
맴돌다 날아
저 멀리 가버리고 싶은데.
( 211008 들풀처럼 )
#오늘의_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