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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과

21 허름한허세 0 53 0 0
(2022년 8월 22일)


열과(裂果)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다 훔쳐가도 좋아
문을 조금 열어두고 살피는 습관
왜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앉고 어떤 시간은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는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했다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걸었다

뜨거워서 머뭇거리는 걸음과
차가워서 멈춰 서는 걸음을 구분하는 일

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열매들은 터지고 갈라져 있다
여름이 내 머리 위에 깨뜨린 계란 같았다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고

나의 과수원
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 부르기로 한다
눈앞에 너무 많은 나무가 있으니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이 가능하겠다

* 안희연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서
- 창비시선 446, 2020. 7.24



:
오늘밤만 지나면
처서가 들이 쳐서

에어컨을 틀지 않고도
잘 수 있는 밤이 오리라

허나 보일러를 돌려야하는
밤도 함께 오리라

그렇게 여름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

머뭇거리
떠나가리니,

( 220822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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