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허름한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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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5 15:55
(2022년 2월 15일)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졸짱붕알을 달고 명태들 먼 샛바다 밖으로 휘파람 불며 빠져나간다 덕장 밑 잔설에 새파란 나생이 솟아나올 때 바람 불면 아들이랑 하늘 쳐다보며 황태 두 코다리 잡아당겨 망치로 머리 허리 꼬리 퍽퍽 두드려 울타리 밑에 짚불 놓아 연기 피우며 두 마리 불에 구워 먹던 2월 어느 날
개학날도 다가오고 나는 오늘을 안 듯 눈구덩이 설악으로 끌려가는 해를 무연히 바라보다 오만 데 바다로 눈길 준 지 잠시인걸 엊그제 속초 설 쇠고 오다 미시령 삼거리서 사온 누렁이 두 마리 돌로 두드려 혼자 뜯어 먹자니, 내 나이보다 아래가 되신 선친이 불현듯 생각나
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쓸개 간 있던 곳에서 눈냄새가 나고 납설수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 것이다
명태들이 삭은 이빨로 떠나는 새달, 그렇게 머리를 두드려 구워 먹고 초록의 동북 바다로 겨울을 보내주면,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왔고 우리 부자는 친구처럼 건태를 구워 먹고 봄을 맞았다 남은 건 내 몸밖에 없으나 새 2월은 그렇게 왔다 가서 이 시만 이렇게 남았다
* 고형렬, [밤, 미시령]에서
- 창비시선 260, 2006. 3.17
:
오늘,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 왔고
우리는
'쐬주를 마실 때',
명태를 부를 것이다.
고 3 가을, 이 노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 220215 들풀처럼 )
#오늘의_시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졸짱붕알을 달고 명태들 먼 샛바다 밖으로 휘파람 불며 빠져나간다 덕장 밑 잔설에 새파란 나생이 솟아나올 때 바람 불면 아들이랑 하늘 쳐다보며 황태 두 코다리 잡아당겨 망치로 머리 허리 꼬리 퍽퍽 두드려 울타리 밑에 짚불 놓아 연기 피우며 두 마리 불에 구워 먹던 2월 어느 날
개학날도 다가오고 나는 오늘을 안 듯 눈구덩이 설악으로 끌려가는 해를 무연히 바라보다 오만 데 바다로 눈길 준 지 잠시인걸 엊그제 속초 설 쇠고 오다 미시령 삼거리서 사온 누렁이 두 마리 돌로 두드려 혼자 뜯어 먹자니, 내 나이보다 아래가 되신 선친이 불현듯 생각나
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쓸개 간 있던 곳에서 눈냄새가 나고 납설수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 것이다
명태들이 삭은 이빨로 떠나는 새달, 그렇게 머리를 두드려 구워 먹고 초록의 동북 바다로 겨울을 보내주면,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왔고 우리 부자는 친구처럼 건태를 구워 먹고 봄을 맞았다 남은 건 내 몸밖에 없으나 새 2월은 그렇게 왔다 가서 이 시만 이렇게 남았다
* 고형렬, [밤, 미시령]에서
- 창비시선 260, 2006. 3.17
:
오늘,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 왔고
우리는
'쐬주를 마실 때',
명태를 부를 것이다.
고 3 가을, 이 노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 220215 들풀처럼 )
#오늘의_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