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장의 밀고 논란
경찰청의 전신 내무부 치안본부가 인노회를 본격 수사한 건 1989년 2월이었다. 노태우 정부 출범 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혐의를 적용한 첫 사건이었다. 당시 관련자 15명이 구속됐다. 같은 해 4월 구속된 김 국장의 대학 1년 선배는 이듬해 출소 뒤 극단적 선택을 했고, 유족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인노회가 이적단체라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찰의 영장이 한 번 기각된 적이 있는데, 2년 전 대법원은 재심 사건에서 인노회가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 1년 전 김 국장은 인노회에 가입했지만 이듬해 갑자기 동료들과 연락이 끊겼다. 동료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던 같은 해 8월 김 국장은 경찰에 특채됐다. 이후 대공 분실에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검거 표창을 받아 4년 8개월 만에 경장에서 경위로 초고속 승진했다. 김 국장은 동료 밀고 의혹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며 부인했다. 반면 옛 동료들은 김 국장이 신군부를 위해 운동권의 정보 수집 업무를 한 프락치였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김 국장이 특채 전 만난 인노회 사건의 수사 책임자 이력과 시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대공3부장이던 홍모 전 경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보고서의 최초 작성자로 알려져 있다. 홍 전 경감은 4일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인노회 사건에서 (김 국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고 특채로 받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홍 전 경감이 특채했다는 주장에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김 국장은 1989년 7월경 경찰을 찾아갔다고 했지만 홍 전 경감은 수사 전인 “그해 초”라고 했다.
▷인노회 수사를 전후해 경찰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은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 축소 사건의 재발을 막자며 경찰 중립 법안을 제출했다. 당시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이 치안본부 폐지와 경찰청 분리였다. 31년 만에 부활한 경찰국의 상징인 경찰국장이 고문 수사와 프락치 의혹이라는 경찰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김 국장이 사실 관계를 상세히 밝히고,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 정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