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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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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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스토킹 범죄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스토킹 가해자는 대부분 피해자와 아는 사이다. 피해자 A 씨(28)와 가해자 전모 씨(31)도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다. 일반 범죄의 경우 특별한 원한 관계가 아니면 동일인을 상대로 반복해서 저지르진 않는다. 하지만 스토킹은 상대가 마음을 받아주거나, 물리적으로 스토킹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면 장기간에 걸쳐 반복된다. A 씨는 입사 이듬해인 2019년부터 전화와 문자로 300차례 이상 스토킹을 당했다.

▷스토킹의 세 번째 특징은 갈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점. 전 씨는 처음엔 ‘만나 달라’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가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는 단계로 갔다. A 씨는 지난해 10월 불법 촬영과 협박 혐의로 전 씨를 고소했지만 이후로도 피해가 계속되자 올 1월 스토킹 혐의로 재차 고소했다. 징역 9년을 구형받은 전 씨는 결국 A 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1심 선고 하루 전날이었다. 범행 당일 법원에 두 달 치 반성문을 제출하고도 신당역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스토킹은 초기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바로 경찰에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 괜히 자극했다가 더 큰 봉변을 당할까 겁도 난다. 가족이나 직장에 피해가 갈까 숨기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서 도와주기도 어렵다. A 씨도 피해가 3년 가까이 이어진 후에야 경찰을 찾았다. 법의 보호도 허술했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전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가 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점도 참작했을 것이다. 경찰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신변보호 조치를 소홀히 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0월 스토킹방지법이 시행된 후 발생했다. 스토커 김태현의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해 사건이 발생한 직후 통과된 법이다. 예전엔 과태료 10만 원의 경범죄로 처벌하던 스토킹 범죄를 이제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으로 다스린다. 하지만 무거운 형벌이 범죄를 막아주진 못한다. 스토킹을 사소한 범죄쯤으로 여기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신당역 같은 일상의 공간은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메모로 가득한 두려움의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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