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바이든
사우디가 미국과 소원해진 틈을 러시아가 끼어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카슈끄지 사건 두 달 뒤인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홀대받던 빈 살만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웃으며 대화하는 등 친밀함을 과시했다. 이듬해 10월에는 12년 만에 사우디를 방문해 오펙과 비(非)오펙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를 고리로 양국 간 협력 관계를 강화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사우디 원유 수출 물량의 4분의 1이 넘는 하루 평균 176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도 중동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교역 규모는 이미 미국을 앞질렀다. 투자도 미국에 버금간다. 사우디 등 중동의 친미 성향 정권들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계기로 미국이 패권국가로 세계 경찰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러고는 발빠르게 기대를 접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이 끝없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뿐 아니라 2024년 선거에서 재선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비난을 감수하며 떠났던 중동 순방에서 바이든은 ‘빈손’으로 귀국했다. 인플레이션 대응도 마찬가지다. 외치와 내치가 엉킨 실타래 같다. 바이든 행정부가 국정운영에 길을 잃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와중에 계속된 기후위기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려던 계획마저 무산됐다. 기후변화 대응은 대통령 취임 이래 가장 역점을 둬 추진했던 과제였다. 낙태 문제를 둘러싼 대응에서 보듯 그의 우유부단함은 이제 ‘행동하지 않고 말뿐’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리처드 닉슨과 지미 카터 뒤를 잇는 ‘인기 없는 대통령’ 반열에 오를 듯싶다. 그런 리더십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박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