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부정행위
저서 ‘도덕적 마음’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하버드대 심리학과 마크 하우저 교수는 2010년 대학의 자체 조사에서 논문 8편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그레그 서멘자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논문 30여 편에선 그림 변조 등의 흔적이 발견됐다. 2018년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소장으로 있는 일본 연구소 내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 논문을 날조한 사실이 확인됐고, 2014년엔 일본 노벨상의 산실인 이화학연구소 연구원이 ‘제3의 만능세포’ 논문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공동 저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구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저명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고 인용되는 횟수에 따라 승진과 연구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기 연구 분야는 선점 경쟁이 치열해 연구자가 설정한 가설에 맞춰 데이터를 손보려는 유혹이 강하다. 표절 같은 부정행위는 상호 감시로 쉽게 발각되는 데 비해 데이터 조작은 내부 고발이 아니면 드러나기 어렵다. 부정행위가 확인돼 논문이 철회되는 경우는 1만 편 중 약 2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2005년 ‘황우석 사태’도 내부자의 고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학술지 ‘사이언스’는 2006년 ‘네이처’에 게재된 후 16년간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연구에 가장 많이 인용된 미네소타대 연구팀의 논문 조작 의혹을 21일 제기했다. 문제의 논문은 뇌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가 알츠하이머의 주요 원인이라는 내용. 사이언스는 6개월간 조사한 결과 그림을 짜깁기하거나 데이터를 조작했음을 보여주는 “놀라울 정도로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논문은 2300회 인용됐고,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이 연구에 2억8700만 달러(약 3700억 원)를 지원했다.
▷과학계는 논문 조작이 사실일 경우 이 논문을 출발점으로 삼은 그동안의 연구와 치료제 개발 노력이 헛일이 되고 만다며 들끓고 있다. 반면 조작이 있었다 해도 전체 연구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뉴턴과 멘델의 데이터 마사지로 만유인력이나 유전 법칙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이번 사태가 ‘과학적으로 사고하되 윤리적으로 행동하라’는 과학계 금언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이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