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제안 톱 논란
문제는 국민제안 톱10이 이른바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기투표라는 데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배너를 예로 들면,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지역·업종별로 차등 적용’, 달랑 이 한 줄의 설명과 함께 ‘본 제안이 마음에 드시면 하단의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라고 되어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지역과 업종은 어떻게 분류되는지 같은 기본적인 판단의 근거는 제공되지 않는다. 물론 ‘싫어요’를 선택할 수도 없다. 댓글 같은 공론의 장도 열려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의 국민청원이 오히려 세대·이념·젠더 갈등을 촉발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국민제안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청원 내용과 청원자를 공개하면 국민청원이고, 이를 비공개하면 국민제안이라는 설명이다. 사실상 같은 제도다. 국민청원 당시에도 정부와 국회의 갈등 조정 과정이 생략된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한 줄짜리 설명과 인기투표로 진행되는 국민제안도 이런 우려를 피해 갈 수 없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관련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참여합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상공인들이 모인 카페마다 국민제안 순위를 올리자는 독려 글이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집단행동에 맞서 아르바이트생들은 “지금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제안이 오히려 양측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인기투표로 정책을 결정하면 갈등이 조정되기보다 증폭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계가 달리거나 건강이 달린, 누군가에게는 삶이 송두리째 바뀔지도 모를 정책들을 온라인 인기투표로 결정한다는 그 발상에도 한숨이 나오지만, 온라인 투표 과정 자체도 허술하다. 이해관계로 뭉친 단체들이 조작 투표를 해도, 한 사람이 기기를 바꿔 여러 차례 투표를 해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렇게 수렴된 국민 의견이 어떤 대표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바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하니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비판이 나온다. / 경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