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부잣집 젓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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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부잣집 젓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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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더위에는 입맛이 떨어진다. 더위에 입맛 떨어질 때 젓갈을 먹으면 입맛이 살아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 중장년이 되면서 그 깊은 맛을 알게 된 반찬이 바로 젓갈이다. 짭짤하면서도 동시에 씁쓸한 맛이 섞여 이게 묘한 작용을 한다. 젓갈이 목구멍을 스치면서 배 속으로 내려가면 더부룩한 위장 상태를 정리해 주는 것이다.

서양 음식은 달달하면서 더부룩하고 느끼한 감을 주는 게 많다. 이걸 잡아내는 맛이 젓갈이다. 전남 화순의 만연산(萬淵山) 자락에 덕헌 조갑환(1890~1984) 선생이 살았다. 만연산의 모양이 뾰쪽뾰쪽 화기가 많아서 아마도 이름을 ‘만개의 연못이 있는’ 만연산이라 지었을 것이다.

이 양반의 학문 세계와 도술(道術)을 취재하다 보니 이 집에서 손님 접대 밥상에 젓갈을 많이 올려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0·80대 할머니들인 덕헌의 따님들에게 물어보았다. “젓갈 종류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돈배젓, 꼴뚜기젓, 토화젓, 명란젓, 게젓, 진석화젓, 어리굴젓, 중하새우젓(중간 크기 새우), 해삼창자젓, 조기속젓, 갈치창자젓, 대구아가미젓, 멸치젓 등이었죠” 따님들이 즉석에서 생각하는 것을 열거해도 젓갈의 종류가 13가지가 된다.

전라도 만석꾼 집에서는 대략 20가지의 젓갈을 놓고 먹었다. 여수, 순천, 목포에서 온 장사꾼들로부터 재료를 구했다. 돈배젓은 초가을에 나오는 전어의 창자가 재료다. 전어 창자는 1마리당 새끼 손톱만큼 나온다. 이걸 모아서 젓갈을 만들면 씁쓸한 맛이 특징이다. 바로 입맛이 당긴다. 귀한 젓갈로 쳤다.

DJ(김대중) 정권 때 감사원장을 지낸 전윤철은 돈배젓을 좋아해 목포에 갈 때마다 젓갈을 구했다. 진석화젓은 무엇인가. 생굴을 한번 끓여서 담은 젓이다. 뜨거운 물에 한번 끓이면 맛이 순해지면서 깊어진다. 이건 주로 추운 겨울에 먹기가 좋았다. 여름에 먹기 좋은 것은 중하(中蝦)새우젓이다. 아주 큰 새우를 쓰지 않고 중간 크기 새우를 쓴다. 작은 새우는 맛이 없지만 중하는 식감이 좋다. 민물새우로 담은 토하젓은 과식했을 때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게장은 주로 봄가을에 먹었다.

1년 열두달 젓갈이 밥상에 올라왔는데, 매일 한 가지씩 돌려가면서 밥상에 올려놓았다. 필자는 돈배젓, 명란젓, 해삼창자젓을 좋아한다. 아직 못 먹어본 젓갈이 대구아가미젓이다. 대구 아가미로 담근 이 젓갈은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잘 상하지 않고, 치아가 약한 노인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젓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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