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의 자기긍정
스포츠만큼 정정당당한 승부가 펼쳐지는 곳도 없다지만, 보기에 따라선 꼭 그렇지도 않다. 격투기처럼 체급별로 붙거나, 골프처럼 샷의 정교함이 필수인 종목들 외엔 ‘신체적 요소(physical)’가 승부를 좌우하는 종목이 많기 때문이다. 수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쑨양(중국) 같은 사례가 없지 않지만, 동양계는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 등에서 서양인에 대체로 뒤지는 게 사실이다.
경기 외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전통적인 백인 강세 종목인 테니스의 경우 세리나 윌리엄스 같은 흑인 선수(여성)가 나왔어도 ‘어쩌다 한 번’이다. 마이클 창(중국계 미국인), 니시코리 게이, 오사카 나오미(이상 일본), 2018년 호주오픈 4강에 이름을 올린 정현 등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자주 어울려 격돌하고 경쟁심을 키워가는 기회가 뛰어난 선수 배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경제력도 유리천장 역할을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는 1947년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첫 출장일(4월 15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지금도 열지만, 흑인 선수의 저변이 예전만 못하다. 1981년 18.7%까지 올랐던 흑인 선수 비중이 지금은 10% 미만이다. 흑인은 돈이 덜 드는 농구로 가고, 메이저리그는 피지컬이 좋은 중남미 선수들이 메웠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실내육상대회(2022 세르비아 선수권)에서 높이뛰기 금메달을 목에 건 우상혁(26)은 연구 대상이다. 그만의 경기력 원천은 그제 경기에서도 엿보였다. 바로 ‘긍정의 힘’이란 정신적 요소(mental)다. 최종 2m34㎝를 넘었지만, 중간에 2m31㎝를 두 차례 실패해 위기에 몰렸을 때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인해 오른발 크기가 왼발보다 작은 ‘짝발’임에도 “구름발인 왼발을 다치지 않은 게 천운”이라고 빙긋 웃는다. 높이뛰기 선수로는 단신(188㎝)이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스테판 홀름(스웨덴·181㎝)을 보며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한다. 플라시보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같은 것이다.
때로는 기회의 공정이 선수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란 긍정의 힘을 불어넣기도 한다. 직전 선발전 성적만으로 대표선수를 뽑는 한국 양궁이 세계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승리가 이뤄지는 곳은 단 한 곳, 승자의 마음속”이라고 했으니, 그런 심리기제가 충분히 작동할 만하다. - 장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