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손주입양
얼마 전 딸아이가 출산했다. 그것도 이역만리 미국에서다. 아내는 코로나19 시국임에도 손주를 돌보기 위해 황망히 떠났다. 미국에서 국내선까지 갈아타며 거의 하루가 꼬박 걸려야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칭 ‘무수리 팔자’라며 입을 삐죽이면서도, 관절에 문제가 있다며 병원을 들락거리면서도 자식이 호출하면 부리나케 달려간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황혼 육아를 담당하는 이런 조부모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목격된다.
전국의 맞벌이 부부 중 절반 이상이 자신의 부모에게 아이의 양육을 맡기는 추세다. 이는 경제적, 정서적 측면에서 아이와 부모에게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부모 입장은 어떨까.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 일쑤다. 손목건초염과 손목터널증후군은 기본으로 달고 산다. 육체적으로 내리막길인 상태에서 손주를 키우다 앓아눕기까지 한다. 그래서 손주 보기를 그만두고 싶다거나 심지어 아들과 딸에게 결혼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딸이 낳은 손주를 조부모가 자식으로 입양하는 것을 허용한 대법원 결정이 처음 나왔다. 손주를 돌보는 단계를 뛰어넘어 아예 자식으로 호적에 올리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곡절이야 있겠지만 ‘헐’ 하는 탄사가 절로 나온다. 손주의 엄마는 고교시절 출산했고, 남편과는 곧바로 이혼했다. 이후 애 엄마는 부모에게 생후 7개월 된 손주를 맡겼다. 손주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빠, 엄마로 알고 쑥쑥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자 입양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원심은 기존 가족관계 질서를 무너뜨린다며 불허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입양이 손자의 행복에 더 부합하는지를 따져 봤다고 한다. 새로운 자녀관계의 탄생이다.
요즘 독신으로 살겠다는 젊은 세대가 많다. 결혼하더라도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부부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회 저변에서 가족의 개념이 확장 추세를 보인다. 단순히 혈연에 얽매이기보다 한 집에 살고, 끼니를 함께하고, 의지하는 생활의 동반자 쪽에 무게가 실린다. 조부모의 손주 입양 허용으로 기존 가족관계의 벽이 더욱 빨리 허물어 질 듯싶다. - 박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