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분실의 멘붕
PC로 카카오톡에 ‘휴대전화 분실, 전화번호 보내줘’라는 메시지를 올린 친구에게 들으니 “기억나는 전화번호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아들 전화번호도 바로 생각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국내 휴대전화 가입 대수는 7127만대로 전체 인구(5170만명)의 1.4배에 이른다. 휴대전화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분실물 목록 1위도 당연히 휴대전화가 됐다. 올해 서울 시내 버스와 택시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잃어버린 물건도 휴대전화(전체 분실물의 31.3%)라고 한다. 서울 지하철에서 1년간 잃어버린 휴대전화도 1만8670대나 된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되는 느낌”이라고 한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은 7.2개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다. 휴대전화에 깔린 모바일 메신저도 쓸 수 없어 사적 연락뿐 아니라 업무 처리도 대부분 막히게 된다. 금융 거래나 결제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뱅킹만 이용하거나, 신용카드 대신 모바일 카드만 사용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경제 활동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개인 정보, 사진과 동영상이 다 털릴 수도 있다. 휴대전화가 없어 일손을 못 잡고 허둥댔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휴대전화 분실은 통행금지나 마찬가지다. 제주도에 혼자 여행 갔다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40대 남성은 갈 수 없는 곳이 더 많았다고 했다. 여행 가이드에 나온 유명 식당, 카페에 갔지만 QR코드도 찍지 못하고 안심 전화도 걸 수 없어 입장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백신을 맞았어도 접종 확인서가 잃어버린 휴대전화 속에 있으니 보여줄 방법도 없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때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알려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생리학회가 2017년 성인 남녀 2000명의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했다. 배우자 사망, 교도소 수감, 화재·홍수, 중병, 해고 등 18가지 상황을 주고 어느 경우에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지 물어본 것이다. 그 결과 ‘스마트폰 분실’은 테러 위협과 거의 같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스마트폰 분실 스트레스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집단은 25~34세 청년층으로 나타났다.
▶국내에 휴대전화 서비스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88년 7월 1일이었다. 33년 만에 휴대전화는 생활 필수품 차원을 넘어 ‘생존 필수품’ ‘제2의 자아’까지 변모했다. 이 정도니 휴대전화 분실을 ‘멘붕(멘털 붕괴)’ ‘영혼 이탈’이라고 하는 것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 금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