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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21 허름한허세 0 434 0 0
(2023년 2월 21일)


조개


놈은 분명 슬픔을 아는 거다
시린 물박에 한줌 뿌려준 천일염
으깨진 발포정처럼 풀어진다
물비린내에 제놈이 빼어문 살덩이는
눈물을 쏟는 흐벅진 시울을 닮아 있다
흐렁흐렁 채워진 물결에
누군들 상처를 뱉어내고 싶지 않으랴

짭조름한 간물에 쉭쉭 토해내는 해캄질
입아귀에서 봉분을 뱉는가, 그러나
다닥다닥 붙은 무늬를 점자책처럼 더듬자
불끈 돋우는 힘살로 앙다문 놈은
이내 제가 간직한 바다를 봉해버린다

등고선 지문을 밀치고 닫아버리는
놈의 껍데기가 거칠다
함부로 읽힐 수 없는 생이라고
그처럼 따닥!
완강하다, 그러므로 나는
돌올한 무늬를 애써 더듬어도
고서(古書)같은 놈의 내력을 알지 못한다
삶아질 때까지도 내내 입 다물어버리는

뿌리는 온몸으로 잇대어
왜 두둑한 껍데기에 묻히는지를, 마침내
멀리 파고에 밀려온 나도
슬픔이란 함부로 보일 수 없는 것이라고
삶은 끝끝내 버티는 것이라고
철썩철썩 때리는 세상에서
좀체 입 열지 않는 것이다

* 김윤이,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에서
- 창비시선 328, 2011. 3.25




:
슬픔이란
함부로 보일 수 없는 것이라고

삶은
끝끝내 버티는 것이라고

철썩철썩 때리는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 230221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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