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이후 한일관계는
지향이 판이한 두 가문이 결혼으로 맺어진 것부터 기이하다. 더욱 특이한 것은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임을 탐탁지 않게 여긴 아버지와 달리 아베 전 총리는 그의 외손자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한 에도시대 사상가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니 그가 ‘일본 우익의 상징’이 되는 건 일찌감치 정해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총리가 자주 바뀌는 일본 정치판에서 두 차례에 걸쳐 8년9개월간 재임한 그는 최장수 총리였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 가장 불편한 시기였다.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불렀고, 역사 왜곡 등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더욱 심해졌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파기한 데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한국 수출 규제로 맞섰다. 군대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 등을 명시한 ‘평화헌법’ 개정과 반격 능력 보유 등의 방위력 증강도 추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역사전(戰)을 걸어 온 이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글을 SNS에 올려 기시다 총리 내각을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2020년 9월 총리 퇴임 후에도 자민당 내 최대 파벌(아베파)을 이끌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이 한·일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선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여당이 과반 의석을 무난히 차지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구심력을 잃은 아베파의 힘이 빠지고 분열하는 대신 비교적 온건한 기시다 총리의 입지가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일본의 태도가 급격히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한·일 관계 개선의 여지가 넓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조의와 위로를 전한다. / 서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