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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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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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향년 81세로 타계한 김지하 시인이 2004년 쓴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창립선언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거듭 읽을수록 더욱 공감이 간다.

“예컨대 임방울의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개굴창에 빠지는 청승스런 대목을 도리어 익살스럽게, 뺑덕어미의 우스꽝스런 작희를 오히려 심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끝없는 인욕정진(忍辱精進)의 ‘삭힘’에서 비롯된 ‘시김새’가 있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그늘’이라 하는데 우리 소리의 미학에서는 바로 이 ‘그늘’이 결정적이다. ‘저 사람 소리엔 그늘이 없어!’ 하면 예술가로서는 끝장이다. 이렇게 윤리적 패러다임과 미학적 패러다임이 일치하는 데에서 우리 민족의 민중예술과 미학의 탁월함이 있는 것이다.” 그는 여기 나오는 그늘에,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흰’(白)을 붙여 ‘흰그늘’이라는 미학 개념으로 확장한다.

시김새도 중요하다. 철학자 이지훈은 김지하 시인의 시김새를 이렇게 풀었다. “시김새는 예술적 기교를 넘어 삶 전체가 예술로 우러나는 양상을 뜻한다. 하나의 예술 세계를 이루는 인간의 능력, 깊이, 성숙한 경험 세계를 포함한다. 여기서 시김새는 삭힘 발효 같은 단어와 심층적으로 결합한다. 삶의 고통을 삭이며 노력한 결과로 나타나는 깊은 경지, 음식으로 비유하면 잘 발효된 맛, 곰삭은 맛이다.” 시김새와 그늘과 흰그늘, 흥과 한은 상호작용하면서 한민족의 미학을 형성한다. 물론, 이런 미학 원리는 지금도 우리 속에서 작동한다.

봄만 되면 수많은 ‘귀명창’ 관객이 어떤 가수의 ‘봄날은 간다’가 더 좋은지 논쟁하다가 아예 스스로 이 노래를 불러 젖히는 모습을 쉽게 본다. 일본·중국·중앙아시아·중남미 등지 한민족 동포 사회를 담은 모든 다큐멘터리에서 흥겹고 격렬하든 처연하고 애처롭든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은 꼭 나온다. 한류 가수의 노래와 춤이 낯설디 낯선 나라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탁월한 보편성을 발휘하는 모습도 유튜브만 클릭하면 무수히 볼 수 있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이런 현상을 관통하는 한민족의 미학 원리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시인이자 사상가 김지하 선생이 오랜 세월 가꾼 ‘시김새와 흰그늘’의 예술론·미학이 있기에, 그때마다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점만으로도 그에게 고맙다. 고인도 문화력과 콘텐츠의 시대에 한국의 도약을 지켜보며 우리 예술의 ‘시김새’가 무르익기를 기대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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